'아폴로 박사' 조경철의 유쾌한 인생 이야기

2006. 6. 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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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변에서 태어난 조경철은 '별을 공부하라'라는 스승의 한 마디에 짐을 싸들고 미시간 대학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의 로맨스, 그리고 아폴로 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 등 재미있고 유쾌 통쾌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들어본다.

************** 이하 방송 내용 **************

▶ 진행 : 공지영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 출연 : 조경철 박사

-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78살이에요.

- 근데 피부가 너무 고우세요.

전 피부에 대해 별로 신경 안 써요. 아침에 세수하면 끝이에요. 로션 같은 것도 안 발라요.

-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세요?

5년 전에 골프를 처음 배워서 한 달에 한 번쯤 나가고요. 헬스클럽을 끊긴 했는데 바빠서 나가게 되질 않아요. 대신 제 나름대로의 건강법이 있어요. 제가 50년 전에 일 때문에 하버드 대학에 갔는데, 그때 하버드대 의과 대학 교수라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헬스클럽이니 뭐니 돈 드는 운동 안 해도 된다, 대신 하루 중 웃고 싶을 때 맘껏 웃으라'는 거예요. 신생아들은 하루에 420번을 웃는대요.

나이를 먹으면서 웃음이 자꾸 줄어들어서 쉰 살 쯤 되면 하루에 30번, 예순 살이 되면 하루에 10번, 일흔 살이 넘으면 하루에 다섯 번이나 웃을까 말까래요. 그러니까 웃을 일이 있으면 단추가 날아갈 정도로 배를 내밀고 호쾌하게 웃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2km를 달린 효과가 있어요. 그리고 화나는 일은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화장실에 가서 욕하고 싶은 만큼 다 욕을 하라는 거예요.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마누라까지 욕을 왕창 하면 가슴이 후련해지는데, 그것 역시 조깅을 2km 달린 효과가 있고요. 그리고 화장실 수도꼭지를 켜고 물 흐르는 소리를 맞춰서 노래를 한 곡 부르면 더욱 효과적이에요. 하하. 이렇게 웃고, 욕하고, 노래 한 곡 하면 조깅 5km를 한 효과가 있는 거니 얼마나 좋아요. 전 그대로 실천하고 있어요.

- 고향이 평북 선천이라고요?

신의주 가까이에 있는 곳이에요. 기독교의 발상지로, 당시 교회가 열 개 이상 있었죠.

- 아버지가 목재소를 경영하셨다고요?

아버지 형제들은 다 농업에 종사하셨는데, 아버지만은 농사가 싫다면서 평양으로 뛰쳐나와서 평양 비행장 만드는 노동일을 하셨대요. 그러다가 목재를 납입하는 일본상인에게 발탁돼서 그때부터 일을 하셨대요. 그러다가 점점 신용을 얻어서 10년이 지난 뒤에 그 일본상인이 아버지에게 사업을 맡기셨대요. 그 후로 아버지가 사업을 확장시켜서 광산도 두어 개 가지셨고, 평양에서는 신흥 재벌로 이름이 있었다고 해요.

- 김일성 대학을 다니셨죠?

우리 엄마는 일제 시대에 대학생 되는 게 꿈이셨대요. 까만 사각모에 제복 입은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면서. 그래서 저에게 '너는 꼭 사각모를 쓴 대학생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해방 후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김일성 대학이 생겨서 들어가게 됐어요. 근데 김일성 대학의 정복은 푸른색의 노동복에다가 동그란 개똥모자를 썼어요. 그러니 우리 엄마가 얼마나 실망을 하셨겠어요.

- 김일성 정권 타도 운동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토지 국유화, 사업체 국유화 등 자꾸 국유화로만 되어 가고, 태극기도 없애버리고, 김일성의 독재화가 점점 심해지는 거예요. 그러다 신의주 학생 사건이 일어났고, 그 다음 해에는 김일성을 암살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어요. 그래서 수류탄까지 던져졌는데, 소련군 장교가 수류탄을 자기 배에 껴안아서 그 사람이 큰 부상을 당한 사건까지 있었어요. 그래서 평양에 있는 우리도 뭔가를 해야겠다 싶어서 제가 성명서를 쓰게 됐어요.

근데 함께 일을 진행하던 여자 한 명이 불안해하더니만 결국 당국에 찌른 거예요. 그래서 새벽 다섯 시에 사람들이 권총을 들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저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저도 감옥살이를 하게 됐죠. 근데 그때는 김일성 체제가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을 때였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당시 큰 사업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손을 쓰셨죠. 그리고 좋은 친구들도 많았어요. 특히 중학교 동창인 송미진이라는 친구가 축구선수로 유명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는 '나 같이 운동 밖에 모르는 머리 나쁜 사람을 여기다 넣어두지 왜 머리 좋은 네가 여기서 썩고 있느냐, 당장 나랑 교대시켜라, 내가 들어갈 테니 이 친구를 빼 달라'고 하기도 했죠.

그런 바람에 한 달 정도 감옥살이를 한 뒤 특별히 나왔어요. 근데 조건이 있었어요. 당시 김일성 대학에는 독보회라는 게 있었거든요. 독보회란 건 아침 11시에 단상 위에서 그 날 발행된 노동신문 표지에 실린 지령을 읽으면서 구호를 외치면 학생들이 함께 호응하면서 박수를 치는 일이었어요. 그때 마지막으로 박수치는 사람의 명단을 적어오라는 거예요. 제일 마지막에 할 수 없이 박수치는 사람은 반동분자라는 거죠. 그런 걸 차출하는 미끼로 저를 이용하려고 했던 거예요. 근데 아닌 게 아니라 독보회 때 가장 마지막에 박수 치는 사람들은 다 제 친구들인 거예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남쪽으로 도망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얼마 안 있으면 통일도 되겠지 싶어서 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보따리를 싸서 월남을 했죠. 그때가 19살이었어요.

- 몇 년 전에 평양을 다시 방문하셨죠?

네. 1999년에 방문했어요.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동생 한 명이 함경도에 있더라고요. 동생도 고생을 많이 했대요. 월남가족이라 집을 다 몰수당하고, 미군 폭격도 엄청나게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화가 나서 자원입대를 했대요. 그러다가 휴전이 되고, 선천에 있는 경영대학을 졸업한 뒤 함경도에서 36년 동안 기계 깎는 일을 해서 국장급까지 진급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동생이 2002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도 52년 만에 동생을 한번이나마 만나고 헤어진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혼자 서울에 오신 후 온갖 직업을 경험하셨다고요?

친구와 콤비를 이뤄서 친구는 기타를 치고 저는 노래를 하면서 다방을 돌아다닌 일을 한 적도 있어요. 다방으로 들어가서 '한 곡조 부르겠습니다, 여러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 동전 던져주는 분도 있었지만, 욕을 하는 분도 있었죠.

- 어렸을 때 꿈 중에 원자폭탄을 만들고 싶은 꿈도 있었다고요?

어렸을 땐 꿈이 많잖아요. 음악회에 가면 지휘가가 되고 싶고, 전시회에 가면 화가가 되고 싶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철학이 멋있는 것 같아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 무슨 얘긴지 알았겠어요, 그냥 폼으로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거지. 하하. 그러다가 일본이 패전을 했는데 그 원인이 원자탄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원자탄을 공부해야겠다고 했던 거죠.

- 천문학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허블이 쓴 '성운의 운동'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전까지 전 막연히 지구에서의 생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게 아닌 거예요. 우주는 엄청난 규모라는 걸 일깨워줬어요. 과학자라는 게 신기하고 위대하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연희대(현 연세대)에 들어갔는데요. 우리나라 이학박사 1호인 이원철 박사가 천문학으로 학위를 따셨거든요. 그 분이 일제시대 때는 반일투쟁을 하셔서 옥살이를 하시다가 해방 후에 초대 관상대(기상청) 대장을 지내시면서 연희대학교에서 천문학 강좌를 하셨어요.

근데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느라 한 학기 때 강의를 한 번 밖에 못하셨어요. 그러고는 학기 마지막에 책 한 권을 나눠주시면서 구두시험을 보겠다고 하셨는데, 친구들은 워낙 강의를 안 한 교수님이라 시험도 안 볼 거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거의 안 했어요. 하지만 저는 혹시나 싶어서 공부를 좀 해갔어요. 근데 정말 시험을 보신 거예요. 그래서 저만 높은 점수를 받았어요. 그러고 난 뒤에 이 분과는 8년 동안 전혀 연락도 없이 지냈는데요, 이 분이 어떻게 제 주소를 아시고는 미국에 유학중인 저에게 편지를 보내신 거예요. 그 편지 내용인 즉 '네가 정치학으로 외도를 하는 모양인데, 그러지 말고 천문학을 하라'는 거예요. 당시만 해도 스승의 말씀은 하늘과 같아서 그 다음날 보따리를 싸서 미시간 대학으로 갔어요. 그게 천문학의 시작이 된 거죠. 저는 지금도 매년 이원철 박사님의 참묘를 합니다.

- 근데 배를 타고 유학을 가셨다고요?

제가 장학금은 받았는데 여비가 없어서 유학을 못 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신문에 '장학금은 받았는데 여비가 없는 학생 10명에 한해서 여비를 지급한다'는 광고가 난 거에요. 그래서 가봤더니 300여 명이 모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험을 치른 뒤 열흘 뒤에 합격 통지를 받았요. 근데 여비 대신에 '부산 제2부두에 집합'이라고 써있는 거예요. 그래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더니 화물선 한 대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호물자를 싣고 난 뒤에 빈 배로 가느니 차라리 학생 10명 쯤 싣고 가는 게 낫겠다 싶었던 거죠. 그래서 화물선을 타고 미국까지 가게 됐어요. 전 생전 처음 배를 타봤는데 지독한 뱃멀미 때문에 시애틀에 닿는 11일 동안 한 끼도 못 먹었죠.

- 유학 시절 가장 고생스러웠던 일은?

처음 미시간 대학에 갔는데, 식당에서 버스보이를 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식당에 갔더니 주인이 빨간 옷을 집어주면서 뭐라뭐라고 하더라고요. 전 버스보이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인 줄 알고 밖으로 나가서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 버스보이라는 건 식당에서 손님이 식사한 식탁을 청소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였어요. 하하. 그래서 버스보이 일을 6개월 한 후에 웨이터로 진급했는데요. 그 때 제 주변에 한국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오신 분이 계셨어요. 그 분이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길래 제가 버스보이 일을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한국에서 교사까지 했던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며 거절하더라고요. 그러고서 그 분은 골프장 캐디로 취직을 했는데, 말이 잘 안 통하다보니 3일 만에 잘린 거예요.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는지 탑 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해서 자살을 해버렸어요. 여기서 제가 말하려는 얘기는 뭐냐면요. 유학이나 공부를 할 때는 자기에 대한 프라이드를 버리고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장래의 길이 열린다는 거예요. 앞을 길게 내다보고 젊었을 때 고생은 마다하지 말라는 거죠.

- 조 박사님은 아폴로 11호로 유명해지셨죠?

제가 중계를 했는데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크게 존재감이 없어서 미국에 특파원을 못 보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AFKN을 그대로 빌려다가 직역을 하면서 해설을 했죠.

- 그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가 달 착륙 당시에 너무 흥분을 해서 티비 앞에서 뒤로 나자빠졌어요. 정말 인상적이었죠. 근데 이번에 <여름 이야기>라는 영화가 만들어지는데요.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가는 시기에 제가 해설하고 통역하는 걸 젊은 남녀가 보고 사랑이 이뤄지는 내용이래요.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그 장면을 재현했어요.

-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제 6촌 여동생이 영등포 극장에 데려가서 영화 구경을 시켜준다는 거예요. 그 때 삼류극장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여주인공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있더라고요. 그 배우가 전계현이었어요. 그 때 영화에서 처음 봤죠. 그 뒤로 제가 동아방송국에서 양주성 박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하나 했는데, 하루는 피디가 '예쁜 여자를 초대하고 싶은데 누구 추천해보라'고 하길래 전계현을 추천했어요. 그랬더니 며칠 뒤에 정말 왔더라고요. 그래서 대담이 끝난 뒤에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근데 순순히 가르쳐주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 후에 전화를 걸었더니 자기 집으로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갔는데요. 영화배우라 화려하게 집을 꾸며놨을 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책하고 피아노 한 대랑 의자 하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검소할 수가 없었어요. 알고 보니 자기도 사실은 공주사대를 나와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자기 삼촌이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라고 해서 우연히 배우가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 동안 교제한 뒤에 프러포즈 해버렸어요.

- 화천에 건설 중인 조경철 천문과학관은 어떤 시설인가요?

화천군에서 조경철 천문대를 세우고 싶다는 요청이 왔어요. 60억 정도의 규모로 광덕산에 1m짜리 망원경, 25cm 굴절 망원경, 저의 흉상까지 세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뿌린 씨는 거두는 것 같아요. 평소에 노력하면 좋은 결말이 오는 거예요. 열심히 뭔가를 뿌리는 행동을 하면 언젠가는 거둘 때가 올 거예요.

▶ 진행 : 공지영

▶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 (월~토 오후 4시 5분~5시)

▶ 한글주소 : 특별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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